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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천미술관 역사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는 원래 나주군 비읍면에 속하였으나 일제치하에서 행정구역개편으로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모산리는 문화류씨 夏亭公 柳의 후손들이 600여간 世居해 온 유서 깊은 洞里이다.

 

 나주군에 속해있을 때 나주고을에서 유명한 3개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첫째는 羅州郡 老安面 金安洞이요, 둘째는 茅山里이며 셋째는 會津 마을이다.

金安洞은 이조때 그 유명했던 申叔舟가 태어난 곳이요, 둘째인 茅山里는 約濟 柳尙運(약제 류상운)과 그의 아들 晩菴 柳鳳揮(만암 류봉휘)의 父子政丞이 태어난 곳이며 會津마을은 林悌 林白湖가 태어난 곳으로 예로부터 3대 유명마을로 선정하였다고 한다.


 아천미술관을 設立한 月當 柳秀澤(류수택)씨는 5대째 살아온 현재의 집터에 미술관 (부지 약 3000평)과 가족유물관을 새로 증축하고 각종 유품 및 유물과 미술품을 전시·보관하고 있다.

 5대조 山亭(산정)(號)선생께서는 서당을 설립, 후학에 힘쓰셨으며 4대조인 竹軒(죽헌)(號) 고조부께서는 正三品 通政大夫를 지내시고 敎旨를 비롯한 각종유품 남기셨으며 증조부님 역시 書當을 운영하고 나주향교 전교를 지내시는 등 선조대대로 후학도를 위하여 노력하셨다.

 

 祖父이신 友石 柳 赫(우석 류혁)선생께서는 抗日獨立運動家이시며 그로인하여 3차례 7년 4개월 동안 광주, 목포,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였다. 이때 옥중에서 왕래한 서신은 후손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고 있다.

 

 柳 赫선생께서는 1945년 朝鮮農民會를 창설하여 조선 農民會 副會長과 常任委員會 議長을 역임 하셨으며 民族共産黨인 柳 赫씨는 해방을 전후하여 朝鮮共産黨 全南道黨委員長에 임명되었으나 祖國의 統一을 염원하던 선생께서는 끝까지 信託統治(신탁통치)반대투쟁을 展開하였기로 유명하였다.


미술관 입구를 들어서면 네모진 돌비석에 遺民遺墟(유민유허)란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보통사람은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 내용인즉 獨立運動家 柳 赫 선생의 선친이신 愚齊(우제) 柳興仁선생께서 1945년6월에 작고 하셨을 때 류 혁 선생께서 遺民遺墟(유민유허)란 글귀를 명정에 새겨 관을 덮으셨다고 한다.

 이 뜻은 가정적으로는 “가족도 살고 집터도 남는다”는 뜻도 되지만 그때 당시 일제치하로 독립운동을 하였던 유혁선생께서는 “아무리 일본사람들이 이 땅에서 무슨짓을 하든 그래도 백성도 살아남고 조국의 국토도 남는다”는 뜻이라고 선생을 아는 많은 지인들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我泉美術館은 원래는 我泉亭(아천정)을 짓기로 하고 문헌과 아천 이라는 정자이름을 爲堂 鄭寅普(위당 정인보)선생이 작명하셨다고 한다.


 鄭寅普선생과 柳 赫선생과의 관계는 함께 獨立運動을 하였던 呼兄呼弟하는 절친한 친구사이인데, 정인보 선생 文集(문집)6권 423~425쪽 내용을 보면 두 분의 사이가 얼마나 돈독한 사이인지 짐작할 수 있다.


 我泉亭은 解放 후 社會가 혼란하여 정자를 짓지 못하고 후에 柳 赫 先生의 장손인 月當 柳秀澤씨가 조부님의 정신을 계승하여 我泉美術館을 설립하게 되었다.


미술관은 구관, 신관, 유물관, 관리동 등 4개동으로 분류되었는데 신관은 추상화를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구관은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어 사실화와 조각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유물관도 1층과 2층으로 구분·전시되어 있다.

1층 山亭齊관은 조상들의 얼과 유물 및 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별히 독립운동가인 柳赫선생의 獄中書信(옥중서신)이 전시되어 있다. 1층 別館은 한국화가 전시되어 있으며 세미나실 겸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2층 竹軒館(죽헌관)에는 독립운동가 柳 赫선생 후손 및 가족들의 유품과 기록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장손인 月堂 柳秀澤씨는 고창군수, 완주군수, 정읍시장, 여천시장, 순천시장, 내무부대변인 그리고 광주광역시 부시장 및 국영기업체 사장을 역임할 때의 모든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에게 받은 任命狀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며 그분의 이력이나 性品이 어떠하였는지 감히 짐작 할 수 있다.


 2층 별관에는 전 한양대교수, 國會議員 및 韓國 造弊公社 社長을 역임하였으며 우리나라 고인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 잃어버린 7백년 마한역사 복원을 주장, 영산강고고학 박물관(마한박물관)건립에 앞장 선 세계거석문화협회 총재를 지낸 柳寅鶴 社長께서 사재를 들여 준비한 화폐전시관에 화폐와 우표가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화폐와 우표의 발전사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류 혁 선생의 막내아들인 류건사장의 교보실업사장과 교보문고사장, 그리고 한국관광공사 사장시절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류수택씨의 동생인 故 류춘택 대한승마협회 전무이사의 유품들이 정리되어 있다. 故 류춘택씨는 1983년 86,88올림픽 준비 차 미국을 시찰하고 귀국하는 길에 소련의 대한항공 격추사건으로 고인이 되었다.

 

 밖으로는 약1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야외음악당이 있으며 약10여점의 유수한 조각품도 전시되어 있다.


비록 위치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자리 잡고 있으나 미술품 및 조각품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명실상부한 미술관이기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계속 좋은 그림, 좋은 조각품을 관람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 설립자의 취지이다.

 

 경희대학교 최병식 교수(미술평론가)는 우리나라 최전방의 미술관이라 평하고, 숭실대학교 김광명 교수(미술평론가)는 미국의 뉴멕시코의 사막에 있는 미술관과 비유하기도 하였다.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한 오광수 미술평론가, 황영성 前조선대부총장, 최영훈 前조선대 미술대학장과 화가 석성 김형수, 박지택, 유수종, 임은순 그리고 조각가 정윤태, 김행신 은 아천미술관의 운영위원으로 있다.


또한 원로 한국화가이신 임병성 화백은 미술관의 고문이시다 

 

 

설립자 류 수 택

 

     경력

  • 前,  고창.완주 군수
  • 前,  정읍.여천.순천 시장
  • 前, 국무총리 공보비서관

  • 前, 내무부.행정자치부 공보관

  • 前,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

  • 前, 한국소방검정공사 사장

  • 前, 아크로 컨트리 클럽 대표이사

  • 前, 전남개발공사 사장

  • 前, 한국법인 조선대학교 이사장

  • 現, 2012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 부위원장

  • 現, (주)고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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